향유 옥합 깨트려서라도

오늘 우리는 종려주일로 지키며 예배합니다. 예루살렘을 향하여 발길을 옮기시던 주님의 마음을 느끼십니까? 정말 가고 싶지 않았을 그 길 말입니다. 걸음마다 어찌 이리 무거울까를 수없이 느끼셨을 것입니다. 가시 면류관을 써야 했고 살이 찢어지고 피를 토해내야 하는 길 이었습니다.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그 길을 가셨습니다. 오늘 우리가 주님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하고 주님의 뒤를 따라가기를 부탁드립니다. 매년 이 시간이 다가오면 홀로 장례식을 준비하던 한 여인이 떠오릅니다.

주님은 여러 번 당신의 죽음을 예고하셨습니다. 다시 말하면, 제자들로 하여금 당신의 장례식을 준비케 하셨다는 의미일 것입니다. 하지만 제자들은 다른 더 중요한 것들로 인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습니다. 그런데 제자들이 깨닫지 못하던 시간에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. 주님을 따르며 수종들던 여인입니다. 마 26:6-13에 등장하는 마리아 입니다. 이 여인의 향유 옥합 사건은 주님의 장례를 홀로 준비하던 모습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. 주님의 죽으심을 느끼고 그 사람 앞에 몸부림 치며 아파하던 한 여인이 자신의 전부 였던 향유를 부어 그 분의 길을 예배합니다. 이제 다가올 절망과 고통의 시간 앞에 주님께 드리는 헌신 입니다. 흘러내리는 피와 눈물, 그리고 죽음 앞에 마지막 드릴 수 있는 사랑입니다. 아무도 모릅니다. 3년 반이나 동거동락 하던 제자들도, 그토록 애원하며 따르던 무리들도 모릅니다. 그리고 이 여인도 모릅니다. 다만 죽음을 향해 걸어가시는 주님의 모습을 떠올립니다. 몇 날 몇 일을 고민하고 또 고민합니다. 그러다가 향유가 있음을 깨닫습니다. <이것이라도 드리자. 이것이라도 그 분께 부어 내 마음을 드리자> 하는 생각으로 옥합을 깨트립니다. 어김없이 주변에서 날아오는 날카로운 질책들이 쏟아집니다. 그러나 이 여인의 마음과 행동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. 아무 소리도 듣지 않습니다. 그 어떤 수치도 감수할 것입니다. 오직 주님을 향한 가슴 속 아픔, 그리고 사랑을 나눌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. 머리카락으로 씻고 눈물로 씻습니다. 하지만 주님은 향유보다 더 진한 향기로 눈물보다 더 많은 피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. 그래서 나는 지금 눈물을 드리고 장례식을 준비하지만 그저 주님의 은혜에 감격할 뿐입니다.

이 깊고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우리 함께 누리지 않으시렵니까?